삼제(三諦)와 사문(四門) 법문은 (석영산 엮음.중명출판사) '행복한 인연 부처님 찾아가는 길'책에서 공부하여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말머리 시작하는 글 부터 들어가보면,불교란 무엇인가?어떻게 수행하는 것인가?그 결과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불교용어 지식이 부족한 나는 이책을 통해서 지식을 지혜로 거듭나고 있어서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정진하고 있습니다.
1. 삼제
삼제(三諦)란 진리의 세 가지 측면인 공제(空諦), 가제(假諦), 중제(中諦)를 말한다.
제(諦)란 진실되고 명백하다는 뜻으로 진리를 일컫는 말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실한 이치(理)를 말한다.
첫째, 공(空)이란 만법(萬法)의 일체의 성분을 말하는 것인데 공제는 모든 존재 모든 법은 변화므로 변하지 않는
진실된 아(我)가 없고 공이라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인 부정의 원리에 의해 표현되는 평등의 원리이다.
둘째, 가(假)란 일체의 존재와 만법(萬法)이 각각 임시로 인연에 의해 화합하고 있는 피상(皮相)의 면만을 말하는 데
가화합(假和合)의 상태이다.
가제는 모든 존재는 공이면서 인연에 의해 임시로 존재하는 것이다.
적극적 긍정의 논리에 의해 표현되는 차별의 원리이다.
셋째, 중(中)이란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라고도 하며, 모든 존재, 모든 법은 공이면서 가이고 또한 공도 아니고 가도 아니며, 언어와 사고를 초월한 것이다.
공과 가의 양쪽의 둘이 아닌 차별 즉 평등의 원리이다.
또한 공과 가의 이면(二面)을 갖추고 있으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엄연한 본질 이것이 중제(中諦)이다.
인왕경 권상(卷上)에서는 공제(空諦), 색제(色諦), 심제(心諦)라 하였으며, 보살영락본업경 권하(卷下) 불모품 제5와
인과 품 제6에서는 유제(유諦), 무제(無諦), 중도 제일의 제(中道第一義諦)라 하였다.
용수보살의 중론(中論) 권 4(권(卷四) 관사제품(觀四諦品) 제24에서 삼제의 뜻을 찾아볼 수 있는데 곧,인연 소생법(因緣所生法)-인연이 생기는 모든 법은 아설즉시공(我說卽是空)-아는 곧 이를 공이라 하며 역위시가명(亦爲是假名)- 또한 이를 가명이라고도 이름하며 역시중도의(亦是中道義)- 이를 또한 중도의 뜻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삼장교와 통교는 중도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삼제를 이루지 못하고 별교 및 원교에는 삼제가 있다.
별교의 삼제는 서로 분리되어 융합되지 않아서 단공(但空), 단가(但假), 단중(但中)이라 하며, 처음에 공제를 관하여 견사혹(見思惑)을 타파하고 다음에 가제를 관하여 진사혹(塵沙惑)을 타파하고, 다시 중도를 관하여 무명혹(無明惑)을 타파한다.
※ 원교의 삼제는 삼제 각각이 스스로 그 속에 다른 두 가지를 갖추고 있으며, 이를 즉 공(卽空), 즉 가(卽假), 즉 중(卽中)이라 하며 공. 가. 중 삼제는 원융 구족으로 융합되어 상즉상입(相卽相入)한다.
이를 원융삼제(圓融三諦), 부사의삼제(部思義三諦)라고도 한다.
이를 실상이라고 하는데 삼제 즉 일제(三諦卽一諦) 일제 즉 삼제(一諦卽三諦)로서 시간적으로 순서와 단계가 없고,
공간적으로 격별(隔別)이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을 말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 일체의 법은 반드시 공. 가. 중의 세 가지 진리의 측면을 갖추고 있다.
공. 가. 중 삼제는 앞뒤가 없어 모든 세계에 적용되므로 광대한 것이고 한 법이라도 모자람이 없기 때문에 원만한 것이다.
즉 횡으로 모든 세계에 다 퍼져 있고, 종으로 모든 시간이 일관되므로 자재한 것이다.
한 측면에 고집하지 않는 융통무애의 세계관을 나타내는 것이다.
원교의 수행에서는 일념에 삼제의 진리를 총체적으로 관하는 일심삼관을 세운다.
이 삼제가 즉 십여실상(十如實相)이며, 법신(法身). 보신(報身).응신(應身)의 삼신(三身)이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을 삼제에서 본다면 백계(百界)는 가제(假諦), 천여(千如)가 공제(空諦)이고, 삼천 세간이 중도(中道)가 된다.
일념 삼천이라 해서 법문은 많지만, 결국은 삼제이며 삼신 여래(三身如來)를 설하고 있는 것이다.
묘락대사는 일승원교의 수행에 관해서 "일념(一念)의 마음에 있어서 십법계(十法界)에 입각하지 않으면 사(事)를 포함함이 널리 미치지 못하며, 삼제에 입각하지 않으면 이(理)를 섭(攝) 함이 널리 미치지 못하고, 십여시(十如是)를 말하지 않으면 인과(因果)를 갖추지 못하며, 삼세간(三世間)이 없으면 의정(依正)을 다하지 못하느니라(마하지관홍결-摩訶止觀弘決)라 하였다.
백법계(百法界)로 나타난 색상(色相)은 모두 일체 가(假)의 뜻이므로, 가제이며, 천여(千如)는 모두 공(空)의 뜻이므로 공제이며, 삼천 세간은 통틀어 법신(法身)의 뜻이므로 중도이다.
법문을 많다고 하더라도 오직 삼제이며, 이 삼제를 삼신 여래라고도, 삼덕구경(三德究竟)이라고도 합니다.
법계(法界)의 생명의 법의 진리가 남김없이 다 총섭(總攝) 해지는 고로 삼제에 입각하지 않으면 이(理)를 섭(攝) 함이 널리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은 50년 중에 앞의 42년은 미현진실(未顯眞實)의 화타(化他)의 가르침이고, 법화 8개년(法華八個年)은 개시진실(皆是眞實)의 자행(自行)의 가르침입니다.
※일대 50년간 설법의 기간은 길고 법문은 많지만, 모두가 삼제를 설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대체로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삼제의 법문입니다.
※일연 대사는 "돈(頓)과 점(漸)과 원(圓)은 삼교(三敎)이며 이는 일대 성교(一代聖敎)의 총(總)의 삼제로다.
돈. 점의 둘은 42년의 설이고, 원교의 하나는 팔 개년의 설이며 합해서 50년이로다.
이 외에는 법이 없으니, 무엇에 의하여 이에 미혹하랴.
총(總)의 삼제란 비유 켠대, 구슬(珠)과 빛(光) 보배(寶)와 같으니,이 세 가지의 덕이 있음으로써 여의보주(如意寶株)라 하도다. 고로 총의 삼제에 비유함이라.
만약 또 보배 구슬의 세 가지 덕을 각각 분리하면, 아무 소용도 없느니라.
격별(隔別)인 방 판교(方便敎)의 종(宗)들도 또한 이와 같도다.
구슬의 법신(法身)에 비유하고 빛을 보신(報身)에 비유하며, 보배를 응신(應身)에 비유함이라.
이 총의 삼덕을 분별하여 종(宗)을 세움을 부족이라 하여 퇴박하며, 이것을 뭉쳐서 하나로 함을 총의 삼제라고 하느니라.
이 총의 삼제는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이니라.
또 적광(寂光)을 거울에 비유하고, 범성동거통(凡聖同居土)와 방편유여토(方便有餘土)과 실보무장애토(實報無障碍土)의
삼토(三土)를 거울에 비치는 형상에 비유하노라.
사토(四土)도 일토(一土)이고, 삼신(三身)도 일불(一佛)이라, 이제는 이 삼신도 사토와 화합하여 부처님의 일체의 덕이 됨을 적광(寂光)의 부처님이라 하도다.
적광의 부처님으로서 원교(圓敎)의 부처님으로 하고 원교의 부처님으로 생시(生時)의 진실한 부처님(實佛)으로 하며 여타(餘他)의 삼토(三土)의 부처님은 몽중(夢中)의 권불(權佛)이니라.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의 의도(意圖)는 총의 삼제를 설하여 중생에게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 세간에 출현하신 것이다.
[삼세제불총감문교상페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라고 하였다.
정직히 방편을 버리고, 오직 법화경을 믿고 수지독송(受持讀誦) 하여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이라고 제목 봉창하는 사람은 번뇌(煩惱).업(業).고(苦)의 삼도(三道)가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의 삼덕(三德)으로 바뀌어 삼관(三觀), 삼제(三諦)가 곧 일심(一心)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머무는 바의 곳은 상적광토(常寂光土)이다.
삼제는 경(境)이고, 삼관은 지(智)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을 믿고'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 이라고부르면 곧 근본의 지위인 불가사의 한 경지(境智)의 묘법을 우리들의 일심에 깨달아 나타내서 중생은 모두 본문 수량(本門數量)의 당체(當體)의 연화불(蓮華佛)로 나타난다. 이것을 본각무작(本覺無作)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이라 이름한다고 한다.
2.사문(四門)
불교의 진리에 들어가기 위한 문(門)을 네 종으로 크게 나눈 것이다.
곧 유문(有門), 공문(空門), 역유역공문(亦有亦空門), 비유비공문(非有非空門)을 말한다.
유문이란,
일체 모든 법을 있다고 보고 고정된 체가 존재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공문이란,
일체의 존재에 고정적인 체는 없고, 일체를 공으로 보는 견해이다.
역유역공문이란,
모든 법에는 있다는 면도 있으며 없다는 공의 면도 있다는 보는 견해이다.
비유비공문이란 유(有)도 아니며 또는 공(空)도 아니라는 것이며 어느 곳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견해이다.
마하지관 권 6 상에서는 화법(化法)의 사교(四敎) 각각에 이러한 네 가지의 문이 있다고 하여 십육문(十六門)을 세우고 있다.
삼장교(三藏敎)의 사문이란,
삼계안의 모든 법은 있다고 하는 유문,
삼계안의 모든 법은 공이라고 하는 공문,
삼계안의 모든 법은유이면서 공이라고 하는 역유역공문,
삼계안의 모든 법은 유 또는 공을 떠남으로써 득도할 수가 있다고 하는 비유비공문을 말한다.
통교(通敎)의 사문이란,
삼계안의 모든 법은 생겨나지 않는데도불구하고 지혜가 일어난다고 하는 유문,
삼계 안의 모든 법도 그것을 관하는 지혜도, 모두 다 공이라고 하는 공문,
삼계 안의 모든 법은 거울 속의 영상과 같이 볼 수는 있으나(有), 그러나 그 본체를 볼 수는 없다(空)공하는 역유역공문,
삼계 안의 모든 법은 환영과 같은 것이며, 유에도 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는 비유비공문을 말한다.
별교(別敎)의 사문이란,
삼계 안의 허망의 색은 없으나, 삼계 밖에 불성(佛性)이라고 하는 묘색(妙色)이 있다고 하는 유문, 불성도 공하고 대열반도 공이 된다고 보는 공문, 불성을 공 또는 공이 아니라고도 보는 역유역공문, 중도의 이치는 언어의 길이 끊어진 것으로써 설하여 나타낼 수가 없다고 하는 비유비공문을 말한다.
※ 원교(圓敎)의 사문이란,
삼계 안팎의 모든 법인 삼제가 모두 가(假)라고 하는 유문, 삼제가 모두 공이라고 하는 공문, 삼계 안팎의 모든 법은 공이기도 하고 가이기도 하다고 설하는 역유역공문, 종도 법성은 가가 아닌 고로 비유(非有), 공이 아닌 고로 비공(非空)이며, 일색 일향(一色一香)이 중도가 아닌 것이 없고, 하나의 중도가 곧 일체 중도이면서 불가사의라고 하는 비유비공문을 말한다.
☞ 어떠한 교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는가에 따라 증득하는 과보의 깨달음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궁극의 지극한 실대승인 일승원교 묘법화의 수지독송 여설수행은 일체 중생이 빠짐없이 부처님이 되는 최고의 대직도 인 성불로 가는 길이다.
※ 방편을 띤 법화 이전의 원교보다 법화의 순수한 본문의 원교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불교이며, 궁극의 해탈성불의 문임을 부처님께서는 나타내시어 수행의 길을 제시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