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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의 행복/책과의 행복한 만남

11. 운명의 70억 가지 복 (3) ( 제7장 인생유전人生流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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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문을 여는 0.5초의 비밀을 읽고서

저자 : 덕명 채장식

 

종교의 탈을 쓴 가면을 벗어라

 

  일념삼천, 정말 이해하기가 어려운 생명의 원리다. 

삼천 가지의 복이 아니라 불경에 비추어 8만의 팔자라고도 하며 법화경이 6만이니 6만의 팔자라고도 하나 따진다면 70억의 팔자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지구에 사는 인간마다 팔자가 다른데 삼천 팔만이 대수겠는가? 

이렇듯 인간의 팔자는 모두가 나 자신에 의하여 찰나에 만들어져 생명 기저부에 차곡차곡 저장되었다가 인연에 의하여 환생하는 즉시 나타나는 참으로 거머리와도 같은 존재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떨어지려야 떨어지지도 않는 찰거머리다. 

그러나 이 찰거머리도 생사 생사를 되풀이하면서 선근을 쌓으면 떨어져 멀리 도망간다는 운명의 원리를 살펴보면 인간은 생사에 있어서는 선과 악에서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생명철학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을 해 본다.

 

  팔자에 울고 웃는 인간보다 팔자를 인정하고 강한 생명력으로 개척해 간다면 팔자의 문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주어진 환경도 주위도 모두가 나를 버리는 것 같은 마음이 들지만 세상사는 꼭 그렇지마는 아니하지 않는가?

 

  속담에 "죽으라는 법이 없다"는 말이 있다. 

코너에 몰려 죽을 지경이 라도 방도는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보람이라고 생각을 해야 한다.

 

  동물의 세계에 태어났으면 생각할 여유도 없이 강자의 입 속으로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굳이 종교를 믿어야만 나의 복이 정해진다는 논리에서는 부정하고자 한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선과 악의 과보는 같다.

 

  종교를 가지고 있으니 악업이 면제되고 종교가 없으니 악업을 뒤집어쓴다는 논리는 아니다. 

종교와 아무런 관계없이 나의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저장되게 되는 것이 생명철학인 것이다. 

부처를 찾으면서 나쁜 행동을 하고 예수를 찾으면서 나쁜 짓을 해도 죄가 사멸되고 그렇지 않으면 죄가 사멸되지 않는다는  이념이라면 종교에 의하여 인간은 스스로 망가질 뿐이다.

 

  종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순간적으로 깨닫지 못하여 잘못한 언행을 반성하며 다시 그런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맹세의 장이어야 진실한 믿음이고 신앙심이라고 보는 것이다.

 

  맹목적이고 사람을 따르고 무조건적으로 악도 소멸된다는 종교라면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맹신에 의한 사고방식의 편협과 독선주의의 사고방식으로 될 것이기 때문에 불행이다.

 

  왜냐하면 내가 믿는 것만이 옳다고 생각을 하고 타의 행위는 인정하려 들지 않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삼천 가지의 복이든 70억 가지의 복이든 나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때 나의 팔자는 보이게 될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고 자신만이 보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이다.

 

  스님도 부처가 아니면 안 되고 신부나 목사도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되고 하는 편 가르기 식의 교리를 펼쳐서는 안 된다.

 

    따지지 않아도 인간이 얼마나 무섭고 우스운지 알게 되는 것이 우주의 진리다. 

극락도 천당도 우주에 있다. 

부처도 하나님도 우주에 있고 지옥도 마귀도 우주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불행도 우주에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 선도 악도 우주에 전파처럼 존재하는 것이므로 누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우주는 알고 있으므로 각자가 가지고 가게 되어 있는 것이 운명을 가르친 우주의 섭리다.

 

  얄팍한 인간의 심성을 위하여 만든 불상으로 십자가로 이제는 반목과 편견을 버리는 생각을 가질 때가 되었다.

 

  아무리 불경을 흔들고 성결을 흔들어도 석가모니도 예수도 인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간일 뿐이다. 

다만 인간다운 정의로운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은 우주가 있는 한 이어져야 하고 계속되어야 한다. 

이것만이 석가도 예수도 바라는 목적일 것이다.

 

  우주의 근본 법칙은 종교에 따라 인간에 따라 변하지도 않는다. 

불변의 법칙을 깨달은 선각자의 마음을 이어가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그러므로 당연히 종교적인 이해타산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하늘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우주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제 주인에게 돌려주고 인간은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언제까지 남의 등에 올라타고 '내가 주인이다'하고 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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