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문을 여는 0.5초의 비밀을 읽고서
저자 : 덕명 채장식
현재로 말하면 5년마다 국가의 통치자가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돌지만 지구 국가의 행불행은 그 차이가 하늘과 땅이다.
이 모두가 국가를 운영하는 영기의 그릇에서 나타나며 과거가 아닌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공산권도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누가 무너지라고 해서 무너진 것이 아니다.
소련이 무너지니 중소 국가는 그대로 무너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민주주의나 공산주의나 다름이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선거로 국가지도자를 선출한다고 해서 국민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바라본다.
공산주의에서 해방이 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 기대를 가졌지만 현재 각국의 문제를 바라보면 이것도 인간의 한계다.
물론 여러 가지의 제약이나 제도의 미비도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지도자의 정신적 자세에 달렸다고 본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국방, 외교, 문화 등등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 이외에 전문적인 지식의 개념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만들어지는 지도자, 어떤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적인 개념으로 정권의 자리에 앉으면 편향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물이 흐르듯이 흘러가는 정치의 리듬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의욕만 앞서고 실천이 따라가지 못하면 곧 부작용의 문제로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리고 정책을 밀고 나아가면서 결국 국가 파산의 예를 보고 있다.
과거 20세기의 정치 스타일과 현재의 정치 스타일을 같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국가의 발전을 전제로 본다면 흥망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과거에는 산업의 발달 과정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의 노력만으로도 따라갈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지금은 한번 자빠지면 회생 불능의 말조차 적용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미국의 어느 예언가가 말하기를 앞으로 미국에서는 점점 수준 낮은 presidenst가 탄생할 것이란 말이 생각난다.
세계 1,2차 대전을 계기로 국제 사회는 많은 인물의 탄생을 지켜보았다.
그 인물들의 덕택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분된 체제 속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지구는 바야흐로 인간다운 삶을 위한 행복을 찾아 질주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자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공자의 시대로 돌아가나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사상을 배우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조차 분간을 못하고 결정짓지도 못하고 있다.
잘못하면 조선 말기 강대국의 틈에 끼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환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태산 같은 사람들이 많다.
영기는 당방면의 지식과 경험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의 그릇이 우주를 바라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나쁜 의미의 독재는 있어서는 안 되지만 좋은 의미의 독재는 필요할 때가 있다.
이런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의 출현이 아니면 때를 놓치게 되는 운명에 혼인 것이 대한민국호다.
사상과 철학의 혼돈은 사회와 국가를 존립하게 할 수가 없다.
언젠가는 또다시 냉전시대와 같은 폭풍이 불어 닥칠지 모르는 것이 국제 사회의 국방력의 발전이고 경제의 예속화다.
미국의 주도권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일부만 넘어가도 한반도는 휘청거린다.
국제 경쟁력은 이후 물밀듯이 밀려오는 중국과 인도, 러시아 등으로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 휘말려 일어서지 못하는 정치나 정책으로는 급속히 확산하는 강대국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는 지금이다.
앞으로 5년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이 급한 때다.
우파도 좌파도 보수도 진보도 여당도 야당도 똘똘 뭉치지 않으면 삼권분립은 고사하고 나라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
법이 없어서 정치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주먹구구식으로 편을 짜는 것이다.
그 틀 속에 스스로 갇혀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변화의 바람을 잠재우는 국회는 저렇게 한가하게 놀고 있으니 무엇으로 국제 경쟁력과 싸울 것인가?
그때에도 국제 사회와 단식으로 맞대응할 참인가?
잠룡인지 꿈룡인지 분간하기 힘든 사람을 놓고 바라본다고 그 그릇이 저절로 커지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5천만 8천만 그리고 해외 민족까지 생명의 그릇에 집어넣고 우주를 향하여 나아가는 인물이 필요한 때다.
영기는 50%는 타고난 것이고 나머지 50%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억지로 마든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그릇이 아니다.
깨어지고 찌그러진 그릇을 다듬는 것이 만드는 것이다.
누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찬바람이 부는 날도 더운 바람이 부는 날도 비가 오는 날도 눈이 오는 날도 오직 국가관으로 똘똘 뭉친 그런 영기를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어차피 지도자가 되려면 자신을 버리고 내려놓아야 한다.
인기에 매몰되어 버린 지도자는 필요 없다.
인기에 가감승제가 없고 국가관의 가감승제로 반석 위로 끌고 가는 인욕의 갑옷을 입은 그릇을 만들고 만나야 미래는 희망도 꿈도 이루어지는 나라가 된다.
만들려고 억지로 밀어 넣어 옆구리가 터진 그릇은 물이 새기 마련이다.
지금도 영기는 보인다.
그러나 나약한 모습으로는 멀어질 뿐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청정하여 하늘의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맑아 정신적 판단이 분명하고,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정의를 위하여 존재하는 그런 인물이 자리에 앉을 때 국륜(國輪)은 돌아가서 피안(彼岸)으로 사람들을 데리고 갈 것이다.
5년을 50년 같은 시간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가지면 만사형통에 국사편찬의 밑그림이 될 것이다.
이는 만고의 진리이며 성인의 말씀이 아니라도 인간의 수준에서 바라보면 순수한 모습이 보인다.
보기 좋은 밑그림을 깔아 놓고 집도 지을 수 없는 능력으로 설계도도 없는 개념을 가진 사람을 영기라고 본다면 이는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저앉고 마는 어리석은 국사(國事)다.
국가를 움직이는 것은 국민이다.
언론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론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너무나 위험한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있다.
정치가 정치를 정치답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인간이 만들고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