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문을 여는 0.5초의 비밀을 읽고서
저자 : 덕명 채장식
어떤 사고가 나서 보상금이 나왔는데 예전에 자식을 버리고 떠난 부모가 나타나서 보상금을 찾아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연한 것인지 아니면 금수만 못한 것인지는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인간으로서 씁쓸하다.
욕심이 없으면 인간도 아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욕심이 있어야 발전을 한다.
그런데 욕심을 두고 왜 욕을 할까? 욕심도 부릴 욕심을 부리라는 뜻이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회를 둘러보아도 있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들린다.
이런 사람들이 욕심으로 망신을 당하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망신을 당하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망신이다.
어쩌다 재수가 없어서 자신이 걸려들었다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인간이 살다가 재수가 없으면 도둑질하다 들키는 것인가?
그러면 강도나 절도나 모두 재수가 없어서 법 앞에 서는가?
인간의 기준은 인간이 만드는 윤리에 기초를 둔다.
윤리는 양심이다.
양심은 정의다.
정의는 인간성이다.
인간성은 상식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윤리와 양심과 인간성과 상식이 통해야 하는 것이다.
논문도 세금도 모두가 자기 것이 아니면서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도 들켜서 말하는 것이지 아니면 영영 입을 다물고 욕심을 부렸을 것이다.
어느 갑부가 죄를 지어 교도소에 있으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할 때 기가 찰 노릇이 아닌가?
죄를 짓는 것도 욕심에서 일어나는 부끄러움이다.
욕망을 채로 치면 욕심이 나온다.
그 욕심이 내 것이 아닌 것을 밝힌 때 변고가 생기는 것이다.
내 것이 10이면 10만 단단히 여물게 챙기는 것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성의 욕심이다.
더 이상은 과욕이다.
부자가 과욕하면 종이 고달프고 종이 과욕하면 주인이 망한다.
지금은 주인이나 종이나 모두 과욕의 상태다.
법이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이며 국가가 있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
솜은 이불로 있을 때 대접을 받지만 물속에 들어가 버리면 버림을 받는다.
인간도 베풀 때 대접을 받지만 과욕하면 버림을 받는다.
솜으로 있을 때는 가볍기라도 하지만 물에 젖으면 무거워 일어나지도 못한다.
운명이 덜 무거울 때 일어서는 것이 과욕의 순간을 지키는 것이다.
생도 사도 0.5초에 갈라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