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문을 여는 0.5초의 비밀을 읽고서
저자 : 덕명 채장식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팔자는 대다수 불교와 관련이 있는 이야기들이며 불법에 기인한 내용들이라고 알고 있다.
토속신앙이나 불교에서나 팔자에 대한 인간적인 고뇌에 대하여 많은 경험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 불공을 올리거나 49재, 백일재, 천도재 등을 행하고 있으며 역술가를 찾아가서 사주나 부적을 받곤 하지만 모든 것일 운명과 연관이 된 행위가 아닌가?
이러한 인간의 행위는 불안한 미래에 대한 심리로 불 수가 있으며 결국 자신의 팔자를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최고 고등 동물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학력이 높을수록 이러한 행위가 많다는 어느 여론조사에서처럼 인간의 나약함을 알 수 있는 일들이다. 산과 바다의 동물과 고기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 웃겠지만 어찌 보면 인간이 동물보다 못한 부분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의 변동은 인간보다 동물이 먼저 깨닫고 피신을 한다.
예로부터 인간의 지혜 중 많은 부분을 동물에서 얻었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지진, 태풍, 수해, 산불, 가뭄 등 동물이 인간보다 먼저 안다는 것은 예지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동물이 가지고 있는 초음파나 초저주파의 음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인간보다 월등히 높다는 것이다.
이러하듯이 인간에게도 자신에게 불어 닥칠 불길한 예감의 능력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설이지만 부지의 소치로 대응을 못한다는 것이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보인다.
옛날 어느 가정에 아들이 있었는데 운명으로 보면 물에 빠져 익사할 운명인지라 방문을 밖에서 걸어 잠그고 나오지 못하게 하였는데 결국 벼루에 사용하는 물그릇에 코를 박고 죽었다는 일화도 있다.
인간의 예지도 팔자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 같다.
그러면 팔자에 의하여 살아가야 하는가? 란 의문이 생기게 된다.
아니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즉 주어진 운명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노력의 여하에 따라 환경을 바꿀 수가 있다.
팔자라는 큰 테두리도 결국 나 자신이 만든 것이라면 팔자를 바꿀 수 있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이론이 성립될 것이다.
종교는 맹목적으로 따라오라 하고 역술가들은 마치 자신이 나의 팔자를 보장해 주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현실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을 돌아보면서 환경에 적응하는 지혜를 만들어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운명이 있으므로 인간은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라고 본다.
무덤덤한 인생은 결국 무덤덤한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