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문을 여는 0.5초의 비밀을 읽고서
저자 : 덕명 채장식
허공에 안주하는 것은 영혼뿐
이상, 지수화풍에 대하여 개략적인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를 약간 설명하였지만 무궁무진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대우주와 소우주와의 관계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지, 수, 화, 풍이라는 에너지를 대우주로부터 빌려 온 것이라면 임종의 순간에 후에는 대우주에 반납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우선 임종의 순간에 바람을 먼저 반납하게 된다. 숨이 끊어진다는 것이다. 다음에 화를 반납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몸의 열기가 식어지고 차가운 상태로 된다. 차갑기가 얼음과 같을 정도로 냉기가 나온다. 참으로 신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몸의 수분은 매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게 되면 땅에 흡수되거나 대기로 날아가 자연히 반납하게 된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갈 육신도 화장이나 매장으로 반납을 한다. 이리하여 육신으로 태어날 때 빌려 온 것을 모두 반납하게 된다. 임종으로 대우주와 소우주의 임대사용계약이 끝나는 셈이다. 임대료 없이 빌려 온 것을 갚은 것이니 빚도 없고 신용불량자도 아니다. 0에서 0이니 0인 것이다. 공수래공수거가 아닌가?
지수화풍을 4종의 원소 또는 4대라 말하고 공을 합쳐 5 원소 또는 5대라 말하며 식(識)을 합쳐 6종의 원소 아니면 6대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생명철학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생명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남아 있다. 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면 공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 흥미가 따른다. 나의 육신에 남아 있던 영혼의 모습은 육신에서 나와 허공을 헤매게 된다.
과학이 발달하면 뇌파를 검색할 수 있고 뇌파를 따라가 보면 공이라는 생명의 안식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생을 지나고 생과 사를 지나 다시 생으로 되는 현장을 포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생명의 윤회를 과학적으로 밝힐 수 있다는 것이 생명철학의 재미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과학이 발전하면 윤회는 증명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공(空)은 비어있는 그릇이다.
그러나 있으면서도 없고 없으면서도 나타나는 것이 공이라 했다.
무형으로 무게도 없는 그러나 무겁기로 따지면 대우주보다 더 무겁고 가볍기로 말하면 토끼털보다 더 가볍다고 하였다.
선과 악이 존재하고 복과 화가 존재하고 인과(因果)의 법이 나타나며 행과 불행이 상존하고 열 가지의 성질이 나타나며 인연이 맺어지고 양과 음이 공존하고 생과 사를 걸머지고 인생 프로그램이 내장되어 있는 컴퓨터보다 더 정확한 계산으로 나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신비의 공(空).
이것을 우리는 나의 타고난 복 즉 운명이라고 말한다.
과거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또 미래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어디에 머물러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운명이라고 하는 나의 생명.
여기에 이간은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도 자신을 알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가 공이 아닐는지 할 뿐이다.
반납으로 마무리한 나의 육신은 없어졌지만 종합통계와 통계에 나타난 모든 자료를 가지고 생을 사로 마감을 하고 공으로 된 생명은 다음 생으로 이어질 때 인수인계되어 다시 삶의 현장에서 나와 씨름을 해야하는 유인지 무인지가 곧 공이 아닐까?
허리케인, 스나미, 토네이도, 천둥번개, 태풍, 바람, 폭우 등과 같은 생명의 물경이 인생을 살아가다 모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어떻게 지혜를 가지고 잠재우느냐가 인생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관건이다.
지구인구와 대우주의 모든 생명체는 하나가 아니며 똑같은 존재도 아니다.
70억의 생명이 다르듯이 대우주 일체의 생명 또한 다르다.
사람이 있고 동물이 있고 식물이 있다.
그 종류는 얼마이며 유정 무정까지 합하면 그야말로 대우주이다.
공의 생명을 다루기 위하여 철학과 미신과 종교과 난립하고 있지만 인간의 고뇌는 끊이질 않는다.
왜 그런가?
같은 인간이고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왜 이런가? 라는 의문은 지구가 태어나고 인간이 존재한 이후 가장 큰 의문이며 해결되지 않는 인간만의 비극적인 문제이다.
우주에는 인간 생명의 비밀이 숨어있다.